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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story] HMM이 부산으로 간 진짜 이유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오늘 주총, 등기가 바뀌었다. HMM은 오늘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본사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공식 변경했다. 세계 8위,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의 주소지가 여의도에서 북항으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HMM은 이달 안에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고 북항에 랜드마크급 사옥을 새로 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이 이전은 쉽지 않았다. 육상 직원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노사 갈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졌고, 파업이 실행될 경우 중동전쟁에 따른 국내외 물류 마비와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대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 HMM은 연내 대표이사 집무실을 먼저 이전하고, 서울에는 영업·금융 부문 직원을 위한 지점을 두는 방안을 검토한다. 부산상공회의소는 HMM 본사 이전이 완료되면 앞으로 5년 동안 15조 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2만 명 이상의 고용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숫자는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이전이 단순한 본사 이동이 아니라는 건, 타이밍을 보면 안다. 호르무즈가 바꿔놓은 항로 지도 올해 국내 해운·물류 업계에서 북극항로가 갑자기 현실의 언어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2026년 이란과 서방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이 급감했다. 기획예산처와 해양수산부는 이 상황을 "특정 항로에 대한 높은 의존성이 국가 경제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됐다"고 규정하며 북극항로 활성화를 대안 마련의 핵심 과제로 명시했다. 수에즈 운하와 호르무즈 해협. 한국 수출입 화물의 99.7%가 바닷길을 통해 움직이는데, 그 핵심 길목 두 곳이 동시에 불안해진 것이다. 대체 항로에 대한 논의가 정책 문서 속 개념에서 실제 예산과 일정이 붙은 사업으로 전환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부는 오는 9월 3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운항하는 북극항로 시범운항 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시범운항은 단순 화물 수송을 넘어 이차전지·자동차·농수산물 등 주요 수출품의 물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평가된다. 수에즈 운하 경유 대비 거리는 약 30%, 시간은 2주 남짓 단축된다. 물류비 절감 효과는 이론적으로 크다. 부산이 가진 것 숫자부터 보면 부산의 현재 위치는 나쁘지 않다. 부산항은 지난해 물동량 2440만TEU로 세계 7위, 환적화물 1349만TEU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부산항 신항은 미주·유럽·북극을 잇는 글로벌 항로 교차점에 있는 핵심 항만으로, 북극경제 시대 물류 중심지로 도약할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가 정책 입안 과정에서 제시됐다. 행정 인프라도 빠르게 집적되고 있다. 2025년 12월 해양수산부가 정부 부처 최초로 세종이 아닌 부산 동구로 단독 이전을 완료했고, 동시에 북극항로추진본부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HMM이 오늘 등기를 옮긴 건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정부 부처, 공기업, 민간 선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 총장은 "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한 지금 선제적으로 나서면 한국은 단순한 경유지를 넘어 글로벌 물류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며 "부산은 물류·금융·행정 허브, 울산은 친환경 연료 에너지 허브, 경남은 내빙·쇄빙선 건조 기지로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부울경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했다. 중장기 인프라 계획도 구체화됐다. 진해신항은 총 15조 1000억 원을 투입해 초대형 컨테이너선(2만 5000TEU급 이상)이 기항할 수 있는 21선석을 2040년까지 조성한다. 부산항 신항과 진해신항을 합치면 처리 가능한 선석 수는 총 59개로 늘어나 세계 최대급 항만으로 도약하게 된다. 아직 없는 것 칭찬만 있으면 기획 기사가 아니다. 북극항로 구상에는 구조적 난관이 세 겹으로 쌓여 있다. 첫째, 지금 북극항로는 컨테이너 항만의 게임이 아니다. 2024년 북극항로를 통한 화물 운송의 95%가 러시아와 중국 양국 간에 이뤄졌으며 화물의 주류는 원유와 벌크화물이다. 컨테이너선은 2024년 기준 통항 선박 1781척 가운데 15척에 불과했다. 부산항의 핵심 경쟁력이 컨테이너 환적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극항로가 부산에 의미 있는 물동량을 가져오려면 구조적 전환이 먼저다. 둘째, 러시아 변수는 크고 예측이 어렵다. 핵심 구간인 북동항로가 러시아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통과하는 만큼 운항 허가부터 안전 조건까지 모두 러시아 당국과 협의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강화된 미국과 EU의 대러 제재는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상반기 중 러시아 당국과의 협의를 준비하고 있지만, 국제 제재 위반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항 방식과 시기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한국이 미국·EU 동맹을 유지하면서 러시아 영해를 통과하는 항로를 상업화하는 건 외교적으로도 까다로운 줄타기다. 셋째, 제도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북극항로만 하더라도 쇄빙연구선·기후연구·조선·에너지·보험·금융·국제해사·수리조선·법률·외교 기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지만, 현재 국회 상정 중인 북극항로 특별법은 연구·관측·항로 모니터링에 초점을 둔 부분법으로 산업·정주·금융·투자·관광·교육 기능을 통합 조율할 권한이 없다. 9월 시범운항이 진짜 시험대 정부는 쇄빙선 등 극지항해 선박을 건조하는 경우 최대 110억 원까지 지원하고, 항만시설사용료 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2030년까지 쇄빙 컨테이너선 건조기술 등을 개발하고, 전문인력인 극지 해기사도 본격적으로 양성한다. 9월로 예정된 부산~로테르담 시범운항은 홍보 이벤트가 아니라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어야 한다. 운항 비용, 일정 변동성, 쇄빙 조건, 화물 손상률. 이 숫자들이 쌓여야 상업화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다. HMM이 부산으로 온 건 단순한 지역 균형 발전의 상징이 아니다. 국내 최대 선사의 본사가 북극항로의 출발점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한국 해운이 다음 항로를 진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준비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이뤄지느냐는, 9월 첫 시범 항해가 끝난 뒤 공개되는 숫자들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