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글로벌 통신 산업에서 설비투자(CAPEX) 전략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 몇 년간 5G 네트워크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던 통신사들이 이제는 투자 효율성과 수익성 개선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5G 구축 일단락… 이제는 '수익'이다
5G 도입 초기에는 네트워크 커버리지 확대가 핵심 목표였다. 이에 따라 주요 통신사들은 기지국 설치, 광케이블 구축, 스펙트럼 확보 등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했다. 미국의 Verizon과 AT&T, 유럽의 Vodafone 등 글로벌 통신사들은 5G 인프라 구축을 위해 수년간 높은 CAPEX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네트워크 구축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서 통신사들의 전략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인프라 확대보다는 투자 대비 수익(Return on Capital)을 높이는 방향으로 CAPEX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 가상화·클라우드로 효율 높이고, 엔터프라이즈로 수익 다변화
최근 통신사들은 네트워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가상화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기반 네트워크 기술을 도입하면 물리적 장비 투자 부담을 줄이고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네트워크 장비 기업인 Ericsson과 Nokia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새로운 수익원 확보를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통신사들은 엔터프라이즈 서비스와 사설 5G 네트워크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제조업·물류·스마트팩토리 등 산업 현장에서 초저지연 네트워크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업용 네트워크 서비스가 새로운 성장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통신사들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컴퓨팅이 결합된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 서비스가 향후 핵심 시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 국내 통신 3사, 글로벌보다 빠른 전환
이 같은 흐름은 국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속도와 집중도에서는 글로벌 경쟁사들을 앞서는 양상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이동통신 3사의 합산 CAPEX는 5G 상용화 원년인 2019년 9조 5950억 원에서 2023년 7조 2972억 원으로 매년 하락세를 이어왔다. 2025년에는 총 7조 5990억 원 규모로 예상되며, 이는 전년 대비 약 2% 추가 감소한 수치다.
속도 면에서 국내가 더 가파른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이 2019년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만큼 투자 성숙기에도 가장 먼저 진입했기 때문이다. KT CFO는 2024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5G 투자(CAPEX)는 거의 종료가 되었다"고 공식화했으며, 6G 투자는 기술 표준이 완성되는 2028~2029년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Verizon이나 AT&T가 여전히 5G 커버리지 확장에 상당한 투자를 유지하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국내 통신사들이 글로벌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또 다른 지점은 '공동망' 전략이다. SKT는 인구 대비 5G 커버리지가 상당 부분 강화됐고 통신 3사 공동망 구축이 예상됨에 따라 CAPEX의 효율적 집행으로 중기적으로는 전체 규모가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사가 독립적으로 망을 구축하는 미국·유럽 통신사들과 달리, 망 공유를 통해 투자 부담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 CAPEX 무게중심, 5G에서 AI 데이터센터로
국내 3사가 가장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분야는 AI 데이터센터다. 통신 본업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캐시카우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통신 3사가 확보한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은 총 459MW급으로 추정되며, 2028년까지 약 35% 늘어난 600MW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AWS와 7조 원을 투입해 울산에 GPU 6만 장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며, KT는 삼성SDS 컨소시엄과 함께 국가 AI 컴퓨팅 센터 사업에 참여해 2030년까지 320MW 이상 인프라를 확보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파주에 축구장 9개 규모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2027년 완공 목표로 짓고 있다.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3분기 기준 통신 3사 합산 AI 데이터센터 매출은 501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3% 증가했다. 통신 본업이 연 1~3% 성장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다.
MWC 2026에서 SKT·KT·LGU+ 3사는 한목소리로 'AI 기업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하며 조 단위 투자와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공식화한 전략 전환 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과제도 남아 있다… 수익화와 리스크 관리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통신 산업은 높은 부채와 규제 환경이라는 구조적 제약을 여전히 안고 있으며, 주파수 경매 비용과 네트워크 구축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는 특성상 CAPEX 관리가 재무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내 통신사들이 극복해야 할 리스크로는 전력 부족 문제, 데이터 주권 규제,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이 꼽히며, AI 투자의 실질적인 수익화 시점이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6G와 LTE가 연동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2028~2030년 CAPEX가 다시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면서도 다가올 6G 전환 비용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예고된 셈이다.
결국 통신사들의 CAPEX 전략은 대규모 네트워크 구축 단계에서 효율적 운영과 새로운 서비스 수익 창출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향후 통신 산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네트워크 규모보다, 투자 효율성과 AI 전환의 수익화 속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