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검사 결과는 국내 금융권의 심각한 내부 부패 실태를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냈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과 농협조합에서만 2천억 원대 부당대출이 적발됐으며, 가상자산거래소 빗썸,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사 등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이해관계자를 둘러싼 부적절한 거래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건은 금융권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무력화된 현실을 보여준다.
기업은행에서는 882억 원 상당의 부당대출이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뿐만 아니라 배우자, 친인척, 심지어 거래처까지 광범위하게 연루되었다. 대출 증빙 조작, 허위 자금 조달 계획서 작성 등 조직적인 금융범죄가 만연했으며, 금품과 골프 접대까지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점은, 기업은행이 내부적으로 비위 행위를 인지하고도 금융감독원에 보고하지 않은 채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농협조합의 경우에도 1083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되었다. 법무사 사무장이 조합 임직원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실행했으며, 조합 측은 심사 과정에서 명백한 이상 징후를 간과했다. 금융기관이 기본적인 대출 심사 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채 내부자들의 사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빗썸 또한 전·현직 임원들에게 116억 원 규모의 고가 사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셀프 승인’이라는 황당한 방법을 사용했다. 심지어 사택 임차보증금을 개인 주택 분양 잔금 납부에 유용하는 행위까지 벌어졌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의 경우에도 내부 인사가 친인척 명의 법인을 통해 부당대출을 실행하는 사례가 적발되었으며, 일부 직원이 금품을 수수한 정황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금융 비리는 단순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금융권이 윤리강령과 내부통제 규정을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한, 이 같은 부정부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이 위법 행위를 엄정 제재하고,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과거에도 유사한 조치들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 전례가 많다.
금융기관들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보다 강력히 정비하고, 부당거래를 시도하는 인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실행해야 한다. 또한, 금융사고 발생 시 기업의 자율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보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감시와 제재가 필수적이다.
금융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적 부패가 지속된다면 금융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점점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내부고발자의 양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