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한국 자본시장에서 종가는 하루 장세의 마무리이자 다음 날의 기준이 되는 핵심 지표다. ETF·파생상품·기관 평가·벤치마크 산정 등 여러 금융 상품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형성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시장 신뢰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KB증권은 또다시 이 중요한 영역을 훼손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KB증권에 ‘회원 경고’를 내린 것은 단순한 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기본을 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KB증권 S&T본부의 한 부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3월 말까지 특정 종목을 종가 단일가 시간대에 과도하게 거래하며 반복적으로 시세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시장감시규정에서 금지하는 종가 시세 관여 행위로,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가격 신호를 줄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특히 반년 넘게 같은 패턴이 이어졌다는 점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내부 통제, 리스크 관리, 경보 시스템 모두가 사실상 기능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들어 증권사들의 동일한 위반 사례가 이미 여러 차례 제재를 받은 사실이다.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하나증권, 메릴린치 등이 같은 사유로 제재를 받았다. KB증권의 사례는 이 중에서도 대형 증권사가 반복적으로 종가 관여를 한 사건으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사안이다. 해외 선진 시장에서는 중징계와 함께 시장 퇴출까지 거론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이번 관여가 의도적이라기보다 업무상 부주의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금융회사에게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 투자자들은 종가를 기준으로 수많은 금융상품을 평가하고 거래 전략을 세운다. 그 기준이 한 증권사의 부주의로 왜곡됐을 가능성만으로도 신뢰는 이미 손상된 것이다.
KB증권은 관련 직원 2명에 대해 내부 징계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개인의 실수나 일탈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자기매매의 리스크를 통제하지 못한 조직 시스템이며, 내부 감시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다. KB증권은 자기매매 감시, 종가 단일가 주문 모니터링,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자본시장은 신뢰라는 기초 위에서 움직인다. 혁신적인 금융상품과 AI 기반 서비스, 화려한 디지털 전환 전략도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종가 왜곡은 단 한 번만 발생해도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KB증권은 이번 제재를 단순한 경고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조직의 근본적인 개선과 통제 시스템의 재정비라는 과제를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엇이 달라질지, 시장은 오래 기억하며 지켜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