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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일반/과학

[박재형 칼럼] 사과는 했지만, 강호동 농협 회장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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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사과는 형식만 남고 내용은 비어 있었다. 국민과 조합원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그 고개는 끝내 자신의 자리에서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번 사과는 책임의 시작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완성에 가깝다.

 

최고 책임자가 직접 사과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이번 사태의 무게가 너무 크다. 농협을 둘러싼 신뢰 붕괴는 단순한 관리 실패나 현장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강 회장의 사과문에는 사임은커녕, 거취를 고민했다는 최소한의 언급조차 없었다. 책임은 인정했지만,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강 회장은 “쇄신”을 말했다. 그러나 그 쇄신은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무엇을 바꾸겠다는 것인지, 누구를 책임지게 하겠다는 것인지, 언제까지 어떤 결과를 내겠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책임 없는 쇄신, 인적 교체 없는 개혁은 결국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농협은 수차례 같은 장면을 반복해 왔다. 사고가 터지면 사과하고, 쇄신을 약속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달라진 것은 없고, 신뢰는 더 무너졌다. 그 중심에 항상 최고 의사결정 구조가 있었음에도, 그 구조를 책임지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물러난 적이 없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강 회장의 사과가 특히 설득력을 잃는 이유는, 본인이 바로 ‘쇄신 대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조직의 최정점에 있는 자신의 책임은 언어로만 처리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반성과 책임의 태도인가.

 

공공성과 협동조합의 가치를 내세우는 농협에서, 최고 책임자의 자리란 단순한 경영직이 아니다. 국민과 조합원의 신뢰를 위임받은 자리다. 그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을 때, 가장 먼저 책임을 묻는 대상 역시 회장 자신이어야 한다. 사임이 법적 의무가 아닐 수는 있어도, 도덕적·정치적 책임의 선택지에서 빠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사과만 남기고, 모든 판단을 미래로 미뤘다. 쇄신은 하겠다고 했지만, 쇄신의 출발점은 끝내 자신이 아니었다. 이는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자리를 지킨 채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국민은 더 이상 선언을 믿지 않는다. “뼈를 깎겠다”는 말도, “다시 태어나겠다”는 표현도 이제는 신뢰를 회복하기보다는 냉소를 키운다. 행동 없는 사과, 결단 없는 쇄신은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라 위기의 연장선이다.

 

강호동 회장의 사과는 질문을 남겼다.

이 조직의 책임은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실체를 드러내는가.
그리고 최고 책임자는 언제 책임의 무게를 자신의 자리와 연결할 것인가.

사과는 했지만,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은 회장.

 

그 선택이 농협의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였는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실기였는지는 곧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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