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GS그룹의 인사가 발표된 이후 재계 안팎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키워드는 ‘변화’가 아니다. 오히려 ‘세습’과 ‘정치’에 가깝다.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이 나란히 부회장에 오르면서 차기 총수를 향한 오너 일가의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경쟁이 기업 혁신을 위한 건강한 리더십 경쟁인지, 아니면 또다시 반복되는 가족 중심 승계 드라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지배구조의 과도한 혈족 의존성이다. GS그룹의 주요 계열사에서 주요 역할을 맡는 인물 상당수가 허씨 일가의 3·4세다. 이번 인사에서도 허철홍·허진홍·허태홍 등 오너 4세들이 일제히 전진 배치됐다. 한국 주요 대기업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하고 글로벌 기준의 투명 경영을 강조하는 흐름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GS에서는 여전히 ‘성(姓)’이 실적·전략보다 중요한 지표처럼 보인다.
허용수 부회장은 실적과 지분 면에서 ‘합리적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GS에너지를 이끌며 신재생 사업 확대와 에너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그룹 내 최상위 수준의 수익성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지주사 GS의 개인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GS그룹의 후계 논의가 경영 능력 검증이 아니라 지분 구조와 혈연 중심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허세홍 GS칼텍스 부회장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정유와 석유화학이라는 GS의 ‘캐시카우’를 이끌고 있는 오너 4세의 대표 주자지만, 최근 실적은 내리막이다. 정유 부문이 선방하고 있어도 석유화학 사업이 장기간 적자를 이어가며 전체 실적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했다는 점은 “실적보다 혈통이 우선하느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이번 인사는 세대 교체의 명분과 실제 경영 성과 사이의 괴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GS칼텍스 실적은 2022년 이후 2년 연속 하락했고, 석유화학 사업 구조조정은 아직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너 4세 승진이 줄줄이 이어지니 “GS가 혁신보다 가문 중심 안배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사업 구조 자체의 미래 리스크다. GS는 삼성·LG처럼 확실한 신성장동력군이 있는 그룹이 아니다. 정유·석유화학·유통 중심 사업 구조는 글로벌 경기 변동과 환경 규제 강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총수 승계 문제가 오너 일가 경쟁 구도로 흐르면, 미래 전략 논의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 GS에 필요한 것은 승계 레이스의 가속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포트폴리오 재편과 미래 먹거리 확보다.
GS가 이번 인사를 통해 얻은 것도 있다. 두 명의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며 내부 경쟁이 촉발됐고,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와 전략적 속도 조절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쟁이 ‘건강한 경쟁’인지, 아니면 ‘가문 내부의 권력 다툼’인지에 따라 GS그룹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재계의 시선은 지금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이고 있다. GS는 혁신을 선택할 것인가, 세습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GS그룹의 다음 10년이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