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우혜정 기자 | 한국은행이 어제 3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를 공시했다. 예금은행 저축성수신금리 연 2.82%, 대출금리 연 4.20%. 전월 대비 각각 0.01%포인트, 0.06%포인트 내렸다. 숫자 자체는 크지 않다. 그런데 이 작은 움직임 뒤에 있는 사정이 복잡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금 연 2.5%다. 올해 들어 1월 동결, 2월 동결, 4월 동결. 세 번 연속 그 자리에 서 있다. 다음 결정은 5월 28일이다. 시장은 이번에도 동결을 점치고 있다. 그런데 동결이 과연 '아무것도 안 한 것'인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내리고 싶지만 내릴 수 없는 이유
한국은행이 올해 초 금리를 내리지 못한 데는 두 가지 벽이 있다.
하나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4월 28일 기준 1,473원 수준이다. 지난 12개월간 원화는 약 2.86% 하락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연 3.75~4.00%, 한국이 2.5%니 한미 금리차가 최대 1.5%포인트다. 이 상태에서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리면 외국인 자금이 더 빠르게 빠져나가고, 원화 약세가 가팔라진다. 그러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진다. 한국은행 총재는 "중동 사태만 없었으면 환율이 상당히 안정될 수 있는 국면으로 변했다"고 했다. 중동이 변수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가계부채다.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률이 연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대출이 더 풀리고, 집값은 더 오르고, 가계부채는 더 쌓인다.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면 그게 한국 경제 전체의 뇌관이 된다. 한국은행이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구조다.
올리자니 가계가 무너진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일부 증권사는 3분기, 그중에서도 7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환율 방어와 물가 억제를 위해 선제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고유가와 원화 약세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이 인상의 명분이 된다는 시각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시중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원리금 상환 연체가 이미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시중금리가 빠르게 올랐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게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들이었다.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다. 그 언저리에서 버티는 사람들에게 기준금리 인상은 직격탄이 된다. 한국은행이 과거 미국만큼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고, 그 구조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1분기 GDP 1.7% 성장, 그런데 체감은 왜 다를까
한국은행이 지난 23일 발표한 1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1.7% 성장, 전년 동기 대비 3.6% 성장이다. 5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반도체 수출과 투자가 이끌었다.
그런데 실질 국민소득(GDI)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전기 대비 7.5% 증가, 전년 동기 대비 12.3% 증가. GDP보다 훨씬 크다. 반도체 수출 단가가 폭등하면서 교역 조건이 크게 개선된 덕이다. 삼성전자가 57조를 버는 동안 그 과실이 실제 소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체감 경기는 다르다. 4월 경제심리지수(ESI)는 전월 대비 2.3포인트 하락한 91.7이다. 100 이하면 평균보다 비관적이다. 반도체가 좋아지는 동안 내수는 여전히 더디고, 자영업과 소상공인 층의 체감은 숫자와 따로 간다. 성장이 특정 섹터에 편중될수록 이 간극은 커진다.
WGBI 편입, 조용히 진행 중인 판 바꾸기
금융시장에서 올해 가장 조용하지만 구조적으로 중요한 변화 하나가 진행 중이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다.
WGBI는 글로벌 채권 패시브 펀드들이 추종하는 대표 지수다. 한국이 편입되면 외국인 자금이 국내 국채 시장으로 자동으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추정 유입 규모는 최소 50조 원 이상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3월 한은금융망 운영시간을 확대하고, '프로젝트 한강' 실거래 파일럿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인이 국내 채권을 거래하기 편하게 인프라를 정비하는 작업이다.
WGBI 편입이 본격화되면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원화 강세 압력이 생기고, 국채 금리가 내려가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도 조금 넓어진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올해 하반기 환율과 금리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조용한 변수다.
5월 28일, 한국은행이 던질 메시지
다음 금통위는 5월 28일. 동결이 유력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기자회견에서 나올 말이다.
중동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고, 삼성전자 파업 변수까지 더해졌다. 유가가 올라 물가 상방 압력이 있고, 원화는 1,473원대를 유지 중이다. 가계부채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신호를 보내면 시장은 원화 약세로 반응할 것이고, 인상 시그널을 보내면 취약 차주와 중소기업이 먼저 무너진다.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이 자리. 한국은행이 '갇혔다'는 표현이 과하게 들린다면, 지금 한국 금융의 구조적 모순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 것이다. 5월 28일 총재의 첫 문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