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story] 무기 팔던 나라에서 안보 파트너로…K방산이 넘어야 할 다음 문턱

  • 등록 2026.04.24 09: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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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억 달러 수출 전망 뒤에 숨은 구조적 과제 해부

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올해 K방산의 수출 수주 목표치로 시장에서 거론되는 숫자는 377억 달러, 원화로 약 56조 6000억 원이다. DB금융증권과 하나증권이 각각 보고서를 통해 "2026년이 역대 최고 수출 실적을 경신하는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내놓은 수치다. 2025년 대비 3.7배 수준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실탄이 날아들고 있다. 2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노르웨이와 9억 2200만 달러 규모의 K239 천무 다연장 로켓 시스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에는 올해 K9 자주포와 천무 최대 인도 물량이 예정돼 있고, 루마니아에는 K9 54문과 K10 탄약보급장갑차 36대 납품이 진행 중이다. 현대로템은 이라크·페루·폴란드 K2 전차 수출 파이프라인을 20조 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산업연구원이 이번 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방산 수주액 22조 7000억 원이 만들어낸 생산유발효과는 약 46조 4000억 원, 생산유발계수 2.085로 제조업 평균을 넘어섰다.

 

해외는 K방산을 어떻게 보는가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는 2025년 발간한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 방산의 경쟁력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납기 속도와 유연성." 서방 방산 업체들이 수년씩 걸리는 계약 이행을 한국은 월 단위로 해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이 급하게 재무장에 나선 상황에서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가장 결정적인 경쟁 우위였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방산 행보를 두 단계로 나눠 읽었다. 폴란드·핀란드·발트 3국에 신속하게 핵심 무기를 공급한 것이 1단계라면, 2·3단계는 유럽 현지 방산 투자 확대와 AI 기반 방위 플랫폼 협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단순한 무기 공급자에서 신뢰할 수 있는 방위 파트너로 전환하는 중"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 '전환 중'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유럽 방산 전문 매체 밀리타르니는 K방산의 유럽 공세가 유럽 방산 업계에 미치는 파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의 유럽 진출이 무기 시장의 규칙 자체를 바꿔놨다. 판매자 시장에서 구매자 시장으로의 전환이다. 유럽 업체들이 2030년까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납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한다." 한국이 만든 속도 압박이 유럽 방산 구조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평가다.

 

폴란드가 만든 전례

 

K방산 성공의 교과서는 폴란드다. 2022년부터 시작된 폴란드 수출은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전투기, 천무를 묶은 패키지로 진행됐다. 단일 무기 판매가 아니라 폴란드 육군 현대화 프로그램 전체에 한국이 끼어든 구조다.

 

SIPRI는 이 과정에서 현대로템이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K2 폴란드 현지화 버전(K2PL)을 공동 생산하기로 한 것을 특히 주목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폴란드 WB그룹과 합작법인을 세워 유도미사일을 현지 생산하기로 했다. 그냥 물건을 팔고 끝내는 게 아니라 현지 산업에 뿌리를 내리는 전략이다. 이 방식이 다른 나토 국가들에게 한국과 거래하는 심리적 허들을 낮춰주는 효과를 냈다.

 

카네기 보고서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짚었다. 폴란드 교두보가 "다른 나토 국가들로 확장되는 통로가 됐다"는 것이다.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핀란드가 잇따라 계약을 맺은 건 우연이 아니다.

 

KF-21, 판도를 바꿀 수 있는가

 

올해 방산 섹터에서 국내 증권가가 가장 주목하는 이벤트는 KF-21 보라매의 초도 수출 계약 체결 여부다. 한국항공우주(KAI)의 올해 수출 금액이 전년 대비 438%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의 핵심 축이 여기 있다.

 

사우디 공군사령관 일행이 이달 사천 KAI 본사를 찾아 KF-21에 직접 탑승하는 등 수출 협상에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필리핀은 이미 FA-50을 운용 중이고, 2030년까지 12대를 추가 구매하는 계약을 지난해 체결했다. 말레이시아도 2026년 1월 FA-50 2차 프로그램 추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잠재 수요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기존 레퍼런스 국가를 포함해 573~703대 수준으로 추산된다. 성사된다면 K방산이 지상 무기 중심에서 항공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분기점이 된다.

 

커지는 숙제: 무기 판매에서 파트너십으로

 

칭찬만 있는 건 아니다. 카네기 보고서는 제목에서부터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무기 공급자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방위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아직은 물음표라는 뜻이다.


사우디 시장은 그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만든다. 사우디는 방산 분야에서 현지화 비율을 50~70%로 강화하고 있다. 물건만 팔고 싶으면 안 된다. 현지에서 만들어야 하고, 현지 인력을 써야 하고, 현지 기업과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우디의 '비전2030'은 방산 예산을 자국 제조업 육성의 수단으로 쓰겠다는 선언이다.

 

유럽 시장에서도 새로운 장벽이 올라오고 있다. 폴란드나 루마니아에서 한국 설계로 현지 조립된 무기가 EU 방산 인센티브 제도에서 '유럽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법적 논란이 브뤼셀에서 벌어지고 있다. 밀리타르니는 이 문제가 2025~2026년 내내 유럽 의회의 뜨거운 로비 전쟁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한국이 빠른 납기로 확보한 유럽 내 입지가 제도적 장벽 앞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2020년 30억 달러에서 2026년 377억 달러로

 

2020년까지 한국 방산 수출액은 30억 달러가 채 안 됐다. SIPRI 데이터에 따르면 2021~2023년 수출 누계가 380억 달러로 이전 5년 치의 10배가 됐다. 세 자리 수 성장이 몇 년 만에 일어났다.

 

이 속도가 계속될 수 있느냐는 건 다른 문제다. 서재호 DB금융증권 연구원은 "구조적인 실적과 수주 성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했지만, 시장은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뉴스 하나에 방산주가 하루 7~10% 빠지는 변동성을 보여줬다.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면 수요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이 있다.

 

납기 속도와 가성비라는 무기로 문을 열었다. 이제는 현지화, AI 기술 통합, 장기 파트너십이라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무기를 파는 나라로는 이미 증명됐다. 안보 파트너로 인정받는 건 다른 차원의 신뢰 문제다.

박재형 기자 jaypark21@todayeconom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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