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을 불법원인급여, 즉 뇌물성 자금으로 판단했다. 이는 단순히 한 부부의 재산분할 문제를 넘어, 한국 재계와 정치사의 어두운 장면을 다시 환기시키는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 불법적 자금은 혼인 관계에서 형성된 재산 기여로도 인정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둘째, 대통령 재직 중 수수된 뇌물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그 자금이 흘러간 기업 역시 도덕적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었다.
SK그룹, 침묵할 것인가
이 사건의 중심에는 결국 SK그룹이 있다. 대법원이 명시했듯,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자금 300억원은 선대 회장 측에 흘러 들어갔다. 당시 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SK의 현재 위상은 불법적 토대 위에 일부 세워졌다는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SK그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법적으로는 공소시효가 지난 오래된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법 이전에 사회적 신뢰로 존재한다. ‘법적 책임이 없으니 끝’이라는 태도로는 국민 정서와 사회적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해명과 사회적 환원 필요
SK는 먼저 이 자금의 실제 흐름에 대해 투명하게 해명해야 한다. 돈이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그룹 성장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공개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논란을 정리할 수 있다.
나아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환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직접적인 국가 귀속이 법적으로 가능할지는 논란이지만, 최소한 사회 환원·공익 재단 출연 등의 형태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재벌과 정치 권력이 얽힌 한국 현대사의 과오를, 오늘의 SK가 스스로 정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세기의 이혼’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까지
이번 사건은 ‘세기의 이혼’이라는 선정적 수식어로 소비되기 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와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불법 정치자금이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사실, 그리고 그것이 수십 년 후 이혼 소송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제 공은 SK그룹에 넘어갔다. “300억의 무게”는 단순히 한 재벌 총수의 재산분할 문제를 넘어, 기업과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갈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