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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6조 클럽' 눈앞에서 교체된 회장… KB금융, 실적 대신 세대교체를 택했다

이재근 부문장 차기 회장 후보 낙점… 양종희 연임 무산, 11월 20일 임시주총서 확정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역대 최대 실적을 낸 회장이 연임에 실패했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11일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지난달 27일 압축한 숏리스트 3인,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과 양종희 현 회장, 이재근 부문장을 상대로 후보당 2시간씩 심층 인터뷰를 거친 뒤 최종 투표로 결론을 냈다. 이 부문장은 다음 달 2일 회추위와 이사회 추천을 거쳐 11월 2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식 선임되며, 임기는 11월 21일부터 3년이다.

 

금융권이 이 결정을 '이변'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양 회장의 성적표 때문이다. KB금융은 2024년 연간 순이익 5조원을 처음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5조843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도 3조8846억원으로 반기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는 사상 첫 '6조 클럽'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비은행 부문의 실적 기여도도 40%대로 높아져 은행 의존도를 낮추는 성과도 거뒀다. 숫자만 놓고 보면 연임을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운 재임 기간이었다.

 

그런데도 회추위는 교체를 선택했다. 조화준 회추위원장의 설명은 "현재의 우수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성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과가 좋을 때 바꾸겠다는 뜻이다.

 

준비된 재무통' 이재근은 누구인가

 

이 부문장은 올해 60세로 1993년 주택은행에 입행했다. 지주 재무기획부장과 CFO를 거치며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현대증권(현 KB증권), 우리파이낸셜 인수를 주도했다. 오늘날 KB금융이 자랑하는 비은행 포트폴리오의 뼈대를 만든 인물이다. 이후 국민은행 CFO와 영업그룹대표를 지냈고 2022년 업계 최연소 은행장에 올랐다.

 

은행장 3년 동안 그가 손댄 것은 이익 체질이었다. 수익성 중심으로 성장 방향을 다시 잡고 현장 영업을 시스템화했고, 그 결과가 2025년 사상 최대 순이익과 리딩뱅크 탈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룹 내부 평가다. 2025년부터는 지주 부문장으로 옮겨 글로벌과 WM·SME 부문을 총괄했다. 하나같이 KB금융의 오랜 숙제로 꼽히던 영역이다.

 

회추위가 강조한 것은 이 경력의 조합이다. 은행과 비은행을 모두 경영해봤고, 재무·전략·글로벌을 두루 다뤘다는 점이다. 회추위원장은 "금융산업이 재편되고 머니무브가 본격화되는 지금의 상황"을 언급했다. 예금에서 투자로, 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국면에서 은행 하나만 잘 아는 CEO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세대교체의 배경, 금융당국의 시선

 

이번 결정을 KB금융 내부 사정만으로 읽기는 어렵다.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되는 내내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이 변수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논의의 발단은 지난해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한 이후 금융위원회는 개선안 마련에 들어갔다. 핵심은 연임 제한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재임기간을 초임 3년과 한 차례 연임 3년을 합친 최장 6년으로 제한해 사실상 3차례 연임을 막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돼 왔다. 그동안 국내 금융지주는 '70세 룰'로 나이 제한은 두면서도 연임 횟수는 별도로 제한하지 않았다. 당국은 최고경영자의 장기 집권 과정에서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연임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참호구축' 현상을 가장 큰 문제로 봤다.

 

KB금융은 이 논의의 첫 시험대였다. 전임 윤종규 회장이 9년을 재임한 곳이고, 마침 회장 임기 만료가 개선안 논의와 맞물렸다. KB금융이 보도자료에서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기조에 발맞춰 승계절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자평한 대목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절차를 한 달 이상 앞당겨 시작하고, 외부 후보의 불리함을 줄이는 데 무게를 두고, 전 과정을 공개했다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회추위 스스로 '현직 회장의 연임 관행'과 거리를 두려 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다른 금융지주에 던지는 질문

 

KB금융의 선택은 다른 지주사에도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5대 금융지주 중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현재 2연임 중이며 함영주 회장은 2028년 3월, 진옥동 회장과 임종룡 회장은 2029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된다. 3연임 제한이 법제화되면 이들의 추가 연임은 원천 봉쇄된다. 법이 아니더라도, 역대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조차 교체되는 선례가 생긴 이상 각 지주 이사회가 느끼는 압박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실적이 좋은 CEO를 정해진 시점에 교체하는 것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이다. 개선안 논의 과정에서 금융권이 "경영 자율성 위축"을 우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KB금융 주주 입장에서는 6조원 순이익을 눈앞에 둔 경영진의 교체가 무엇을 가져올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재근 체제의 과제

 

새 회장 후보 앞에 놓인 숙제는 세 갈래다. 첫째는 실적의 유지다. 양 회장 체제의 성과가 워낙 뚜렷했던 만큼 첫 해 실적이 조금만 흔들려도 교체의 정당성이 의심받는다. 둘째는 글로벌과 WM이다. 회추위가 그를 택한 이유가 이 영역이었던 만큼, 부문장 시절 그렸던 청사진을 회장으로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셋째는 연말 인사다. 은행장을 비롯한 계열사 CEO 자리가 대거 바뀔 가능성이 크고,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올라온 회장이 어느 정도 폭의 물갈이를 단행할지가 조직 안팎의 관심사다.

 

KB금융은 지금 가장 잘 나가는 시점에 사령탑을 바꿨다. 위기 때 교체는 흔하지만 정점에서의 교체는 드물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이재근 체제의 첫 실적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