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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코스피 7000 문턱에서 한은이 꺼낸 '영끌 경고장'… 반도체 호황이 가린 세 개의 균열

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7일 코스피가 6,995.39에 마감했다. 하루 만에 308포인트, 4.61%가 올랐다. 삼성전자는 27만원, SK하이닉스는 178만원대에 올라섰고 외국인과 기관이 2조1천억원어치를 함께 사들였다. 7,000선까지 남은 거리는 5포인트가 채 되지 않는다.

 

같은 날 오전, 한국은행은 전혀 다른 온도의 자료를 내놨다. 206만 가구의 대출 자료를 뜯어본 가계부채 리스크 평가 보고서다. 요지는 단순하다. 빚을 최대한 끌어 집을 산 가구는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연체 확률이 0.81%포인트 뛰고, 그 집 안에서 한 사람이 연체하면 1년 안에 다른 가족까지 연체로 번질 확률이 8.8%에 이른다는 것이다. 일반 주택 보유 가구(4.6%)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한쪽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강세장이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앙은행이 가계의 취약한 고리를 짚어내고 있다. 이 두 장면이 같은 날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단일 엔진이 밀어 올린 호황과, 그 호황이 덮어두고 있는 균열이 동시에 커지는 국면에 들어섰다.

 

숫자만 보면 6년 만의 호시절

 

거시 지표는 눈부시다. 8월 수출은 982억5천만달러로 1년 전보다 68.7% 늘었다. 석 달 연속 900억달러를 넘겼고 무역흑자는 347억5천만달러다. 반도체 수출만 466억5천만달러로 6월에 세운 종전 기록(448억달러)을 두 달 만에 갈아치웠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9%. 구글과 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의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되는 한 이 흐름이 당장 꺾일 이유는 없다는 게 산업통상부의 설명이다.

 

반도체를 빼도 수출은 20% 늘었다. SSD용 낸드 가격이 오르면서 컴퓨터 수출이 네 배 넘게 뛰었고, 갤럭시 폴더블 신제품 효과로 무선통신기기도 21% 증가했다. 1∼8월 누적 수출은 6,933억달러. 이달 안에 지난해 연간 수출액(7,097억달러)을 넘어서고, 연말에는 1조달러에 닿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정부 안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성장률도 따라 올라간다. 2분기 GDP는 전기 대비 0.6% 성장해 한은 전망치의 세 배를 기록했다. 한은은 8월 수정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3.3%로 올려 잡았다. 2.6%에서 시작한 숫자가 1년도 안 돼 0.7%포인트 뛴 것이다.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는 이미 지난해 연간 기록(1,910억달러)을 넘어섰다.

 

이 정도면 호황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문제는 이 호황의 구조다.

 

첫 번째 균열: 물가가 다시 3%대로

 

8월 소비자물가는 3.1% 올랐다. 두 달 만에 다시 3%대다. 근원물가는 3.4%로 3년 3개월 만에 가장 높다.

 

착시가 섞여 있긴 하다. 지난해 8월 SK텔레콤이 해킹 사고 보상으로 요금을 50% 깎아준 기저효과 때문에 통신비가 26.7% 뛰었고, 이 항목 하나가 전체 물가를 0.63%포인트 끌어올렸다. 국가데이터처는 이 효과를 걷어내면 8월 물가는 2.5% 안팎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안심할 숫자는 아니다. 생활물가는 3.2%, 식품을 제외한 생활물가는 4.8% 올랐다. 폭염으로 시금치가 한 달 새 68%, 깻잎이 65% 뛰었다. 라면과 시리얼 같은 가공식품도 두 자릿수로 올랐다. 통계상의 기저효과와 별개로, 장바구니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이미 3%를 넘어 있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린 배경이 여기 있다. 7월에 2.75%, 8월 27일에 3.00%. 3년 7개월 만의 연속 인상이었고 채권 전문가 79%가 동결을 점쳤던 자리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신현송 총재는 "물가 위험이 현실화된 뒤 대응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했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성장이 물가 전반으로 번지기 전에 손을 쓰겠다는 뜻이다.

 

금통위원들이 내놓은 6개월 뒤 금리 전망 점도표는 3.25%에 가장 많은 점이 찍혔고 3.50%도 여섯 개나 됐다. 시장은 10월 쉬고 11월이나 내년 1분기에 한 번 더 올린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어느 쪽이든 방향은 위다.

 

두 번째 균열: 금리는 오르는데 대출 문은 넓혀야 하는 모순

 

여기서 정책이 서로 부딪힌다.

 

한은은 금리를 올리는데, 금융위원회는 8월 13일 대책으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에서 3%로 두 배 늘렸다. 지난해 말 가계대출 잔액 1,850조원을 기준으로 증가 여력이 30조원에서 60조원으로 커진 셈이다. 중도금·잔금대출 같은 집단대출은 아예 총량에서 빼서 따로 관리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은행 앞에 줄을 서는 '대출 오픈런'을 없애겠다는 명분이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대출을 조이던 8월에는 5대 은행 가계대출이 18일까지 1조2천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7월 한 달 증가폭(4조원)의 3분의 1이다. 그러나 NH농협은행이 두 달 반 만에 변동금리 주담대를 재개했고, 은행권은 확대된 한도가 배정되는 9월부터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본다. 8월의 감속은 일시적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한은 보고서가 오늘 나온 시점이 묘한 이유다. 금리가 오르는 국면에서 대출 총량을 풀면, 그 돈이 흘러가는 곳은 이미 부채 비율이 높은 가구일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이는 가구가 전체 채무 가구의 11.1%라고 추산했다. 소비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DSR 임계점은 46%. 저소득층에서 이 선을 넘는 비중은 2021년 11.4%에서 14.5%로 올라왔다. 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려도 저소득 가구 연체율은 0.48%포인트, 자영업 가구는 0.40%포인트 오른다.

 

성장률 3.3%라는 숫자 아래에 이런 가구들이 있다. 반도체 수출이 두 배 늘어도 그들의 소득은 늘지 않는다. 그런데 금리는 그들에게도 똑같이 오른다.

 

세 번째 균열: 워싱턴발 변수

 

세 번째 균열은 바깥에서 온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8월 28일 잭슨홀 연설에서 긴축 신호를 보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선물시장에서 9월 16일 FOMC의 금리 인상 확률은 66%까지 올라갔다. 연설 전의 두 배다. 씨티는 "물가는 둔화됐고 고용은 약해졌다"며 인상 명분이 없다고 보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설 이후 움직이지 않으면 연준의 신뢰가 흔들린다고 반박한다.

 

한국 증시로서는 이 변수가 오늘의 급등을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하나증권은 이달 초 "FOMC 전까지 오르다 이후 조정"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채권시장이 인상을 60% 넘게 반영하는 동안 주식시장은 그보다 훨씬 낙관적으로 가격을 매기고 있다. 오늘 코스피가 4% 넘게 뛴 것도 엔비디아와 오픈AI발 AI 생태계 확장 소식에 뉴욕 반도체주가 먼저 반응한 결과였지, 연준의 손이 어디로 갈지에 대한 답이 나와서가 아니다. 이 간극이 좁혀지는 순간이 오면 어느 쪽이 맞았는지가 드러난다. 오늘 개인투자자가 3조7천억원을 팔고 나간 것은 그 순간을 먼저 준비하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도 있다.

 

환율은 1,346.8원으로 내려왔다.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면서 원화가 강해진 결과다. 하지만 연준이 실제로 올리면 방향은 반대가 된다. 한은이 8월에 금리를 올린 이유 가운데 환율 방어가 빠져 있을 리 없다.

 

이번 주가 갈림길인 이유

 

앞으로 며칠 사이 이 세 갈래 균열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른다.

 

8일에는 2분기 국민소득 잠정치가 나온다. 0.6% 성장이 유지되는지, 그 안에서 민간소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관건이다. 9일에는 금융위가 가계대출 동향과 부동산 공급촉진 금융대책을 점검한다. 8·13 대책 이후 첫 월간 점검이다. 10일에는 한은 금통위가 금융안정 회의를 열고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낸다. 신 총재는 잭슨홀 심포지엄과 G20, BIS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이 회의를 주재한다. 11일에는 미국 8월 소비자물가가 나오고, 닷새 뒤 FOMC가 열린다.

 

반도체 호황은 진짜다. 코스피 7,000도 실적이 밀어 올린 숫자다. 다만 지금의 성장은 한 산업이 만든 것이고, 그 산업의 수혜가 닿지 않는 가구에는 물가와 금리만 먼저 도착하고 있다. 오늘 한은이 7,000선을 코앞에 둔 날 굳이 '영끌' 보고서를 낸 것은 이 시차를 잊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호황의 크기가 아니라 호황의 폭이 문제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