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19일 코스피가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되며 6471.17로 주저앉았다. 전 거래일보다 398.66포인트, 5.80% 빠진 수치다. 장 초반에는 낙폭이 6%를 넘기도 했다. 코스닥도 9.74포인트(1.17%) 내린 824.46으로 거래를 마쳤다. 하루 새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조 단위 자금이 증발한 셈이다.
미국발 금리 쇼크의 정체
발단은 전날 밤 뉴욕 채권시장이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5.31%까지 올라 19년 만에 최고 수준을 찍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진행 중인 협상이 없다고 못 박으면서 중동 정세 불안이 다시 불거졌고, 국제유가가 3주 만에 최고치로 튀어 올랐다.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고, 그 우려가 장기 국채금리를 밀어올리는 흐름이 하루 만에 완성됐다.
높은 금리 자체가 새로운 악재는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뉴욕증시를 떠받쳐온 AI 관련주들이 대부분 고밸류에이션 성장주라는 점이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 이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할인폭이 커지고, 성장주는 이 구조에 유독 취약하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가 하루 만에 4.98% 급락한 배경이다. 마이크론이 7% 가까이 빠졌고, 낸드 시장의 샌디스크는 9%, 웨스턴디지털은 7% 넘게 하락했다. 나스닥종합지수는 1.33% 밀린 26289.71로 마감하며 S&P500과 함께 사흘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틀째 급락
국내 증시로 넘어오면 충격은 더 크게 느껴진다. 삼성전자는 7.82% 내린 24만7500원, SK하이닉스는 9.75% 급락한 150만원에 장을 마쳤다. SK하이닉스와 주가 흐름이 밀접한 SK스퀘어는 11%대 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두 반도체 대장주 모두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약세라는 점이 눈에 띈다. 최근 메모리 업황 개선 기대감을 타고 가파르게 반등해온 만큼, 그 되돌림 폭도 그만큼 컸다.
수급을 보면 외국인이 3조4883억원, 기관이 1조3244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외국인 매도는 특히 전기·전자 업종에 집중됐다. 개인 투자자가 물량을 받아내며 지수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반도체 외에도 최근 상승폭이 컸던 자동차, 증권, 철강 업종까지 매물이 번진 점은 이번 조정이 단순히 반도체 한 섹터의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진짜 변수는 따로 있다
증권가 반응이 흥미롭다. 패닉에 가까운 지수 흐름과 달리, 상당수 애널리스트는 "펀더멘털 훼손은 아니다"라는 톤을 유지하고 있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전날 미국 증시의 조정 강도 자체는 크지 않았다는 점. 나스닥 -1.33%는 패닉 셀링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수준이다. 둘째, 빅테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정상적 자금조달이라는 해석이 시장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가 올랐다고 해서 AI 투자 사이클 자체가 꺾였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뜻이다.
다만 안심하기엔 변수가 남아 있다. 이날 밤 공개되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첫 관문이다. 연준 위원들이 최근 물가·고용 지표 둔화에도 유가와 장기금리 상승을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20일에는 미국 소비 체력을 가늠할 월마트 실적이 예정돼 있고, 같은 날 미 재무부의 20년물 국채 입찰 결과도 금리 방향을 좌우할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시장의 딜레마
한국 증시 입장에서 곤란한 지점은 따로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미국 반도체주의 등락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 지수에 반영된다는 구조적 한계다. 최근 반등 국면에서도 상승을 이끈 주역이 반도체였고, 이번 조정에서 낙폭을 키운 주범도 반도체였다. 업종 쏠림이 상승장에서는 화력이 되지만 조정장에서는 그대로 약점이 된다.
키움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전일 급락으로 조정 압력이 상당 부분 선반영됐다며 장중 낙폭 만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7월 폭락 국면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변동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건은 미국 10년물과 30년물 금리, 그리고 테크 기업 회사채 스프레드가 이번 주 안에 진정되느냐다. 이 지표들이 안정을 찾지 못하면 반도체발 변동성은 한동안 국내 증시의 상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