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7월 한 달 동안 국내 증시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역대급 실적을 발표했는데, 주가는 오히려 주저앉았다.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흐름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유는 실적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사상 최대 실적, 그런데 주가는 급락
7월 7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2분기 영업이익은 89조 4천억 원이었다. 같은 분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 기업이 엔비디아도, 애플도 아닌 삼성전자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발표 직후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10% 가까이 급락했다가 결국 6.9% 하락으로 마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함께 흔들렸고 코스피는 매매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3주 뒤인 7월 29일, SK하이닉스가 2분기 영업이익 60조 5천억 원을 발표했다. 증권가 컨센서스를 웃돈 수치였고, 무엇보다 영업이익률이 76.3%까지 치솟았다. 1분기 71.5%도 놀라운 수치였는데 이를 또 뛰어넘은 것이다. 결과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SK하이닉스 주가는 10% 가까이 빠졌고 삼성전자도 5% 넘게 하락했다. 코스피는 이틀 연속 폭락하며 6,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8월 들어서도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사 모두 7월 한 달 동안 각각 22.22%, 34.92% 하락하며 최악의 시기를 보냈고, 8월 4일에도 두 종목 모두 전일 대비 5% 안팎 약세를 보였다. 지난달 31일 각각 26.81%, 29.95% 폭등한 뒤 이틀 만에 그 상승폭의 절반 가까이를 반납한 셈이다.
문제는 업황이 아니라 수급이었다
그렇다면 반도체 업황 자체에 균열이 생긴 걸까. 이 지점에서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체로 일치한다. 부진한 주가의 원인이 메모리 사업의 펀더멘털이나 업황 불확실성 때문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는 다소 주춤해졌지만, 전방 수요가 여전히 공급 확대 속도를 웃돌고 있고 양사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시장 기대를 넘어서는 장기공급계약 성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빅테크들의 메모리 확보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나 양쯔메모리의 범용 제품만으로는 이 수요를 채우기 어려운 구조여서 장기공급계약 체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삼성전자가 메모리 사업을 수주형으로 전환하겠다고 예고할 정도로 산업 자체는 오히려 더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에 비춰보면 현재 주가는 과도한 저평가라는 게 중론이지만, 언제 정상 국면으로 돌아올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장세라는 것이다.
그럼 급락을 만든 진짜 원인은 뭘까. 일각의 부정적 전망이 헤지펀드의 반대매매를 유발하며 글로벌 레버리지 청산을 촉발했고, 국내에서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개인투자자 자금이 몰려 있었던 만큼 수급 왜곡이 확대되며 과도한 투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적이나 업황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포지션 정리가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얘기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 구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지난 5월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다. 상장 당일 전체 시가총액이 4조 4천억 원 수준이었는데, 두 달도 안 된 7월 15일에는 11조 9천억 원으로 불어났다. 문제는 운용 방식에 있다. ETF 운용사는 매일 2배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장 마감 전후로 보유 주식 규모를 조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본주(本株) 가격에 추가적인 변동 압력을 준다. 파생상품인 ETF가 오히려 원래 주식 가격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코스피 급락에 이 단일종목 ETF의 기계적 매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국내 ETF 도입을 주도해 '한국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조차 자기 회사가 파는 상품을 두고 투자하지 말라는 경고를 SNS에 올릴 정도였다.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이 상품 도입이 성급했다며 후회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국은 일단 8월부터 기본 예탁금을 3천만 원으로 올리고, 11월부터는 최소 거래 단위를 20주로 제한하는 식으로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을 택했다. 상장폐지까지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10조 원 넘게 형성된 시장을 갑자기 없앨 경우의 충격도 만만치 않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반도체에 쏠린 코스피
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코스피 대형주 200개로 구성된 코스피200 지수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반면 S&P500에서 반도체 기업 비중은 18% 안팎에 그친다. 미국은 반도체주가 흔들려도 다른 업종이 충격을 상쇄할 여지가 있지만, 한국은 두 종목의 충격이 시장 전체로 곧바로 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최근 코스피 변동성을 나타내는 V-KOSPI 지수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미국 VIX 지수는 오히려 가라앉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변동성은 미국발이라기보다는 국내 수급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다. 올해 들어 사이드카 발동 빈도가 2월부터 6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2008년에는 10월과 11월에 집중됐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중국발 변수, 악재인가 오히려 호재인가
지난달 중국 문샷AI가 신규 언어모델 K3를 공개하면서 또 한 번 반도체주가 출렁였다. 파라미터 규모가 직전 모델보다 세 배 가까이 커졌고 성능도 미국 최상위 모델들과 견줄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미국 빅테크의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시장에 번졌다. 발표 다음 날 미국 반도체지수는 그 주에만 12.5% 하락해 15개월 만에 최악의 주간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이 우려가 과도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효율 좋은 저가 AI 모델이 늘어날수록 기업들의 AI 도입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고, 그만큼 추론 연산을 처리할 데이터센터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 K3는 파라미터 수 자체가 크게 늘어난 모델이라 저장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도 함께 늘어난다. 과거 딥시크 쇼크 때와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의 눈은 이미 연말 주주환원으로
업황도 견조하고 저평가라는 진단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빠르게 다음 카드로 옮겨가고 있다. 바로 연말 주주환원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잉여현금흐름은 각각 260조 원, 11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반가량인 130조 원, 55조 원 정도가 특별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형태로 주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증권가에서 오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마침 내년부터 새로운 3개년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동안은 연간 9조 8천억 원의 정기 배당 외에 3년 누적 잉여현금흐름의 절반을 특별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재원으로 써왔는데, 올해 현금창출력이 워낙 폭발적으로 늘어난 만큼 다음 3개년 계획의 규모도 커질 거라는 기대가 크다. SK하이닉스는 연초 제시한 순현금 100조 원 목표에 성큼 다가섰다. 지난 6월 말 기준 순현금이 약 69조 4천억 원으로, 불과 한 분기 만에 34조 원 넘게 늘었다. 3분기 실적 발표를 전후해 구체적인 환원 규모가 공개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키옥시아 등 경쟁사들이 먼저 주주환원 계획을 내놓은 것도 국내 두 회사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반기가 지나고 주가까지 떨어지자 환원 규모를 키우라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금배당이든 자사주 매입·소각이든, 구체적인 환원 윤곽이 나오는 순간이 지금의 불안한 주가 흐름을 가라앉힐 심리적 저지선이 될 거라는 시각이 시장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