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이혜진 기자 | 지난달 호주 자동차 시장 판매 순위가 나왔다. BYD가 단일 브랜드 기준 2위를 기록하며 기아(3위)와 현대(4위)를 동시에 밀어냈다.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110.8% 급증한 수치다. 내연기관 라인업 없이, 전기차만으로 달성했다는 점이 더 충격적이다. 4월 호주 전체 신차 판매의 약 30%를 중국산이 차지했다.
한국 안방도 다르지 않다. 올해 1분기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판매량은 2만 5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86.1% 폭증했다. 같은 기간 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75%에서 57.2%로 추락했다. 한경매거진이 4월 집계한 중국 전기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약 34%에 달했다. BYD는 국내 첫 고객 인도 시작 11개월 만에 1만 75대를 팔아치우며 수입차 최단 기간 판매 기록을 세웠다.
글로벌로 보면 더 압도적이다. 전 세계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 7400만 대 중 중국이 약 4400만 대, 60%를 점유하고 있다. 누적 판매량 기준 BYD는 약 1500만 대로 글로벌 1위다. 전기차 10대 중 6대가 '메이드 인 차이나'인 시대가 이미 열렸다.
BYD의 무기: 배터리부터 완성차까지 혼자 다 한다
BYD의 경쟁력은 수직계열화에서 나온다. 배터리 셀 개발·생산부터 모터, 전장부품, 완성차 조립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외부 배터리 업체에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사 블레이드 배터리(LFP)는 안전성 테스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공인을 받았고, 원가 경쟁력도 중국 내수 대량생산을 통해 글로벌 경쟁자들이 따라붙기 어려운 수준까지 낮아졌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 지형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1분기 CATL의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은 99.5GWh로 1위, BYD가 33.5GWh로 2위다. 반면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합산 점유율은 15.6%로 전년 대비 2.1%포인트 하락했다. 시장이 커지는데 한국의 몫은 줄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LFP 각형 배터리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해 단기간에 뒤집기 어려운 원가 구조를 구축했다.
가격으로만 싸우는 게 아니다. 올해 1분기 중국 NEV 시장에서 BYD 점유율은 19.8%로 1위, 그 뒤로 지리(13.9%), 창안(8%), 테슬라(5.9%)다. 샤오미 EV는 출시 직후 1분기에만 8만여 대를 팔며 8위로 직행했다. 중국 내수에서 치열하게 단련된 브랜드들이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막힌 곳과 뚫린 곳
모든 시장이 열려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자국 생산 차량에 세제 혜택을 주고, 중국산 전기차에 100% 이상의 고관세를 유지한다. 사실상 진입 차단이다. EU도 중국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방어선을 쳤다. 독일 시장에서 올해 1분기 BYD는 21위(9120대)에 그쳤고, 중국 브랜드 전체가 상위 20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유럽 내에서도 관세 장벽이 높은 곳은 중국차의 침투 속도가 느리다.
반면 관세 장벽이 낮은 호주, 동남아, 중남미에서는 속도가 다르다. 그리고 한국이 문제다. 독일보다 낮은 진입 장벽, 보조금 구조상 중국산에 유리한 환경이 맞물리며 한국 시장은 글로벌에서 가장 빠르게 중국 전기차 점유율이 오르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 현대차 COO는 최근 "보조금 없이 중국 전기차를 이기기 불가능하다"고 직격했다. 이게 솔직한 현장 인식이다.
현대차·기아는 어디서 싸우고 있나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글로벌 전기차 1분기 시장 전체로 보면 현대차·기아는 중국 비非중국 전기차 판매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BYD에 이어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호주에서 BYD에 밀렸지만 기아(6450대)와 현대(6002대) 합산은 BYD(7702대)를 여전히 앞선다. 축적된 브랜드 신뢰도와 딜러·서비스 인프라는 단기간에 뒤집히지 않는 해자다.
미국 시장은 더 안정적이다. 관세 방어막 덕분에 중국산 위협이 제한된 상황에서 현대차·기아의 북미 판매는 작년에 8% 성장했고 올해도 5% 추가 성장이 예상된다. HMGMA 조지아 공장이 가동을 확대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IRA 수혜를 최대한 흡수하는 구조다.
전략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 올인에서 HEV·EREV·EV·FCEV 멀티 파워트레인으로 선회했다. 전기차 캐즘 국면에서 하이브리드로 수익성을 지키면서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하는 전략이다. 하이브리드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팔리는 파워트레인이다. 아이오닉 브랜드는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강화하고 있다. BYD와 가격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의 딜레마
완성차보다 더 복잡한 전선이 배터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글로벌 3위를 유지했지만, CATL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CATL 단독 사용량이 한국 3사 합산의 2.6배다. SNE리서치는 "향후 경쟁력은 지역·고객·제품 믹스 다변화와 전기차 외 신규 수요처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LFP 배터리 양산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중국이 장악한 저가 시장에서 버티려면 LFP 없이는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동시에 NCM·전고체 등 고에너지밀도 배터리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두 트랙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 어느 한 방향만 봐서는 안 된다.
한국차의 생존 조건
부품업계까지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정대진 KAIA 회장은 "부품업계의 사업전환 부담과 기술·인력 확보 어려움이 커지고 있어, 완성차 생산 기반 약화가 장기적으로는 국내 제조업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에만 치중하기보다 세제·인프라·생태계 조성을 통해 국내 생산비용을 낮추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 EU, 일본이 모두 자국 생산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전환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방어막이 있는 미국에서 돈을 벌고, 하이브리드로 브릿지를 놓으면서,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으로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차와 정면으로 가격 전쟁을 벌이는 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BYD 1분기 순이익이 반토막 났는데도 해외 점유율 확대를 멈추지 않는 건, 이익보다 시장 선점을 우선하는 전략이다. 그 전략 앞에서 한국차가 살아남는 길은 BYD가 가지 못하는 곳, BYD가 이길 수 없는 영역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다.
3년 뒤 한국 시장 중국 전기차 점유율 50% 예측이 현실이 되느냐, 아니면 한국차가 방어선을 지키느냐. 그 답은 지금 현대차 개발실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