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e코노믹 = 박재형 기자 | 2025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농협의 실상은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중앙회장 관련 금품수수 의혹, 상호금융의 부동산 PF 부실, 계열 금융사의 반복적인 사고와 내부통제 논란, 온라인 유통 자회사의 누적 적자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농협의 간판 뒤에서 오랫동안 누적돼 온 구조적 병리가 한꺼번에 표면화된 것에 가깝다.
위기의 출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리더십 신뢰 약화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회장 선거를 앞두고 계열사와 거래하던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금품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국감장에서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혐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고 답했다. 전국 1,100여 개 조합을 이끄는 수장의 도덕성과 책임성이 흔들리는 순간, 조직 전체의 통치력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선거 과정에서 가까운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포진했다는 ‘보은성 인사’ 논란까지 제기되면서 중앙회 리더십은 설득력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문제는 도덕성 논란을 넘어 조직 운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호금융 부문의 총 연체 규모가 반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고, 그 중심에는 부동산 PF 대출이 있다. 저금리기 공격적으로 취급된 딜들이 부동산 경기 둔화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부 구간에서 연체율이 20%를 넘는 사례도 나타났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부실이 단순한 시장 환경 탓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신탁사를 통한 대출 심사에서 특정 출신 인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심사 과정에서 이해상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이 부담은 결국 농민 조합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지역 농협의 대출 연체율은 농협은행의 10배 수준까지 치솟았고, 일부 농·축협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도 상당한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불분명한 반면, 보상 구조는 왜곡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합원 보호라는 본래의 취지와 괴리가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 계열사의 내부통제 문제 역시 심각하다는 평가가 많다. 농협은행에서는 감정평가를 반복해 대출 한도를 과도하게 늘렸다는 지적, 고객 자금이 부적절하게 사용된 사례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최근 몇 년간 횡령 등 사고가 잇따르고, 일부는 내부 감사가 아닌 외부 제보로 발각됐다는 점은 상시 모니터링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를 낳고 있다.
NH투자증권과 NH농협생명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개매수 등 투자 관련 정보 활용과 관련해 임직원의 부적절한 행위 의혹이 제기된 사례, 수의계약 관행 속에서 자금 흐름의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보험사 건까지, 문제의 양상은 다양하다. 공통점은 ‘내부 정보와 권한의 적절한 운영 여부’에 대한 의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거버넌스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유통 부문 또한 쉽지 않다. 농산물 유통 혁신을 목표로 출범한 온라인몰 ‘농협 라이블리’와 ‘농협몰’은 가격 경쟁력과 플랫폼 효율성 측면에서 민간 커머스 대비 우위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일부 제품 가격이 경쟁 플랫폼에 비해 높은 경우가 적지 않아, 소비자 선택을 받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 결과는 상당 규모의 누적 적자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회가 연이어 ‘고강도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비친다. 인사혁신, 내부통제 강화, 수의계약 관리 강화, 사고 조합 지원 제한, 책무구조도 도입 등 발표된 내용만 보면 어느 금융지주 못지않은 개혁 패키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 기반이 전제돼야 한다. 해당 쇄신안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다양한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개혁안의 진정성 또는 실질적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농협의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한 계열사의 문제로 보기 어려울 만큼 그룹 전반에 걸친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앙회·금융지주·계열사로 이어지는 복잡한 지배구조, 상호금융과 은행·카드·증권·보험이 뒤엉킨 사업 구조, 선거 과정이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 문화, 내부통제가 실질보다 형식으로 흐르기 쉬운 구조 등은 제도적 재설계 필요성을 시사한다. ‘농업인을 위한 협동조합’이라는 슬로건이 단순 홍보 문구가 아니라면, 일부 규정 손질이나 인사 교체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첫째, 중앙회와 금융지주 간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 100% 지분 구조가 전문경영을 뒷받침하기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하는 통로로 활용돼 왔다는 지적이 있어왔다면, 이를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상호금융 부문은 건전성 기준을 전면 재정비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합의 통폐합과 부실 PF에 대한 투명한 손실 인식이 필요하다. 셋째, 내부통제는 제도 도입보다 ‘실제 집행’이 핵심이다. 사고나 위반이 발생한 조직이나 책임자에게 일관된 책임이 부과되는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누가 쇄신을 주도할 것인가’이다. 농협이 직면한 위기는 리더십 신뢰 약화에서 비롯된 만큼, 쇄신 역시 책임 있는 인사 조치와 신뢰 회복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다양한 의혹과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현 체제가 그대로 쇄신을 주도하는 구조는 구성원이나 조합원은 물론 금융권과 국민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기 어렵다. 농협이 본래의 역할을 회복하려면, 책임질 부분은 명확히 책임지고 그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